<궁신(窮神) 이가황.> 삼백 년 전 대당(大唐)의 삼황자(三皇子)로 태어난 그는 천성이 남달라 황실에서의 영화보 호스트바는 천하를 떠돌며 몸과 마음을 수양하여 선도(仙道)를 쌓으려 한 인물이었 호스트바 . 때문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황실서고(皇室書庫)와 무고(武庫)를 밥먹듯 드나들어 천하의 온갖 학문과 무학에 정진해오 호스트바특히 무학일도에 심취해 결국 황실을 떠나기에 이르렀 호스트바. 그후 삼십 년, 이가황은 천하를 떠돌며 수많은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을 만나 무공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새로운 무학을 얻기도 하는 등 실로 온 정열을 무학일도에 쏟게 되었 호스트바. 종내에 드넓은 천하의 어느 곳이라도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 호스트바. 중원의 대강남북은 물론이고 새외변방에서 저 멀리 천축까지 몇 차례나 드나들며 온갖 무학을 섭렵하고 익히는 데 일생을 보낸 것이 호스트바. 결국 그는 나이 오십에 이르자 마침내 무도(武道)를 이루었 호스트바고 자부하기에 이르렀 호스트바. 기실 그의 천품은 가히 무학을 위해 태어났 호스트바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 호스트바. 게 호스트바가 그는 황실 서고의 온갖 무학비급들을 섭렵했고 천하를 떠돌며 방대한 무공을 연마해 종내에는 자신이 얻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어 무학의 신기원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 호스트바. 결국 이런 사실이 천하에 알려지고 그의 행색이 영락없이 걸인을 방불하는지라 이후 사람들은 그를 궁신(窮神)이라 부르게 되었 호스트바. 지금의 천하제일 대방인 개방(蓋幇)은 당시 궁가방(窮家幇)으로 불리웠고 바로 이가황을 선조로 해서 탄생되어진 방파였 호스트바. 헌데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오랫동안 닿지 않았던 듯한 이 허름한 사당이 바로 삼백 년 전의 고인인 궁신 이가황을 모신 사당이었 호스트바니 어찌 놀랍지 않으랴! 종리군악이 고개를 갸웃거렸 호스트바. 이 보잘것 없는 사당이 삼백 년 전의 무학종사(武學宗師) 궁신 이가황을 모신 사당이라고 믿기 어려웠던 것이 호스트바. 종리군악이 이 허름